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찰리 채플린 (문단 편집) === 사망 === [youtube(J3Pl-qvA1X8)] [[1970년대]] 들어서 다리 부상 등으로 인해 점차 건강이 쇠약해지기 시작한 채플린은 신작을 만드는 대신 그동안 감독했던 영화들에 음악과 색을 입혀서 재개봉하는 현재의 리마스터링과 같은 작업을 하였다. 이때 채플린은 그동안의 영화계에 공헌한 업적에 대한 각종 상과 직위를 수여받았다. 1972년에는 영화 예술 아카데미가 바치는 명예상 시상식을 위하여 약 20년 만에 [[미국]]을 다시 방문하여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자 전원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때 감격에 겨운 채플린이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채플린은 말년에 [[뇌졸중]]을 앓게 되면서 더이상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야 했고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다. 결국 채플린은 [[1977년]] 크리스마스에 [[스위스]]의 [[브베(스위스)|브베]]에 있는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숙환]]으로 [[타계]]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 88세였다.[* 여담으로 전설의 영화 [[스타워즈]]가 개봉한지 7개월이 되던 해였다.] 사후 생전 그의 소원에 따라 [[성공회]]식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유해는 자택 근처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후에는 영화 같지만 아찔한 해프닝이 하나 있었는데, 장례 후 약 두 달 뒤 돈을 노린 두 명의 엔지니어가 무덤을 도굴하고는 채플린의 가족들에게 유해를 되찾고 싶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 어설픈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공공전화를 통해 협박 전화를 걸었는데 처음에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전화를 걸었으나 나중에는 귀찮다는 이유로 근처의 공중전화 몇 개만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챈 경찰이 주변 공중전화를 모두 찾아 결국 체포했다고 한다. 당시 협상 담당은 [[제럴딘 채플린]]이었다고.], 채플린의 유해는 주네브 호숫가에 있던 한 농부의 옥수수 밭에서 발견되었다.[* 이 해프닝은 2015년 자비에 보브와 감독이 '영광의 대가'로 영화화했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손녀인 덜로리스 채플린이 출연한다.] 이후 같은 묘지에 재매장되었는데, 이번에는 도굴 시도를 막기 위해 관 위에 [[방공호]] 수준의 두꺼운 콘크리트가 씌워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